웃는 자화상
나는 지금 ‘웃는 자화상’이라는 그림을 보고 있다.
두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처연하고 윗니가 다 드러나도록 크게 웃고 있는 입은 어쩐지 공허하다. 툭툭 던지듯이 칠해진 탁한 배경 위에 거칠게 그려진 얼굴은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라는 유행가가사를 떠올리기엔 너무 비감하다.
이 자화상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화가 게르스틀(Richard Gerstl 1883~1908)이다.
그는 오스트리아 표현주의 선구자로 인간의 내밀한 심리를 묘사하는데 탁월한 화가였다.
음악비평가가 되고자 할 정도로 음악에도 심취했던 게르스틀은 말러, 쳄린스키 등 당대 유명 음악가들과 많은 교류가 있었다. 그 중에서도 현대음악의 기수이자 12음기법의 창시자인 쇤베르크와는 특별한 사이였다. 쇤베르크는 당시 무명화가였던 게르스틀의 재능을 높이 평가하여 그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예술에 대해 함께 토론하기를 즐겼다.
게르스틀은 매년 쇤베르크가족과 여름휴가를 함께 보내며 그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초상화도 그려주며 가깝게 지냈다.
괴팍하고 냉소적인 남편 때문에 힘들어하던 쇤베르크의 아내 마틸드는 감성적이고 순수한 청년 화가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열정을 어쩌지 못한 두 남녀는 비엔나로 도피한다.
이 일로 상처받은 쇤베르크는 ‘도덕도 규범도 사라진 작금에 음악이라고 규범이 필요하겠냐’고 탄식했다.
쇤베르크는 갖은 협박과 회유로 아내의 마음을 돌리려 애썼고 그녀 또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지 못하고 가정으로 돌아가면서 그들의 도피행각은 두 달 만에 끝나버렸다.
자신의 존재와도 같던 마틸드가 떠나버리자 게르스틀은 더 이상 그림을 그리지 않고 실의에 빠져 폐인처럼 살았다. 어느 날 실성한 듯 웃고 있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에서 발견하고 그 모습을 그리기 시작했다. 우주가 파괴된 것 같은 충격과 슬픔, 좌절, 상실감 등이 점철된 그림 <웃는 자화상>의 탄생이다.
게르스틀은 완성된 자화상 한 점만 남겨놓고 자신의 아틀리에에 있던 모든 편지와 서류, 작품 등을 불 지르고 거울 앞에서 목을 매었다. 스물다섯 살의 천재화가는 불나방이 불꽃을 향해 돌진하듯 그렇게 생을 던져 버렸다.
게르스틀의 죽음에 충격을 받은 쇤베르크는 그 사건을 모티브로 <행복한 손 Die Glückliche Hand>이란 작품을 탄생시켰다.
노회한 쇤베르크에게는 자신의 아내와 게르스틀의 스캔들이 예술적 영감으로 작용했으나 가엾은 젊은 화가에게 짧은 사랑은 지옥이 되어버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미친 듯이 붓질을 하던 게르스틀의 심경을 나는 헤아리지 못한다. 다만 삶의 고통을 감당할 수 없어 생을 버리는 대신 삶을 견뎌 볼 생각은 안 해봤는지 묻고 싶은 것이다.
웃는 자화상을 보면 울고 싶어진다. 벽에 걸어두고 자꾸 볼 그림은 아니다.
<한국산문> 2018년 9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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