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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어려운 숙제

숙제




숙제

안정랑

‘0월 00일까지 수필 한 편 써오기’, 느닷없이 받아 든 숙제다.

수필공부를 하러 다니고 있으니 느닷없단 표현은 적절치 않다.

숙제를 하려고 단어사전, 문장사전을 컴퓨터 옆에 두고 텅 빈 모니터를 30분 넘게 바라만 보고 있다.

학창시절 나는 공부는 잘 하지 못했으나 숙제는 성실히 했던 것 같다.

융통성이 없거나 겁쟁이거나 둘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학교를 졸업하면 숙제도 동반졸업 할 줄 알았는데, 졸업 후에 맞닥뜨린 인생숙제는 까탈스러운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보다 훨씬 더 교묘하고 지능적으로 나를 압박했다.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에 따라 그때 마다 주어진 숙제는 다양했다.

딸, 며느리로서 또는 엄마나 아내로서 살 때 내게 주어진 숙제를 꼬박꼬박 잘 해냈는지 돌이켜보면 그다지 신통한 답이 안 나온다.

살면서 받아든 숙제 중 최대의 난제는 시어머니의 치매였다. 미망 속을 헤매는 어머니가 안타까워 조금이라도 현실에 머물게 하려고 안달했던 기억은, 어쩌면 내 일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무시로 가슴이 서늘해지곤 했다. 내가 해야 했던 숙제 중 가장 길고 어려워서 성심을 다하지 못한 부실한 숙제였다.

아내로서 남편을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시켜야 한다거나 엄마로서 자식들을 출세가도에 올려놓아야 하는 것이 숙제라면 나는 불량학생에다 열등생일 수밖에 없다.

인생총량의 법칙에 따라 ‘아내, 엄마숙제’는 조금 가벼워진 듯 하고 ‘할머니숙제’가 새로이 무게를 더하고 있다.

나이 들면서 웃음에 야박해지고 무뚝뚝한 가면처럼 심드렁한 나를 수시로 무장해제 시키고 어릿광대로 만들어 버리는 이 숙제는 매일 해도 질리지 않는다. ‘손녀’라는 경이로운 존재가 과제로 주어졌음에 감사하면서도 언제까지 내 곁에 둘 수 있을까 문득 조바심이 일곤 한다.

수필숙제를 받아들고 나니 차라리 학교숙제가 나았다는 생각이 든다.

교과서나 참고서, 하다못해 친구 노트를 베껴서라도 해낼 수 있는 것이 학교숙제라면 수필쓰기는 흐르는 강물에서 지나가는 것을 건져 올리려는 것처럼 헛손질을 거듭하게 만든다.

방법은 두 가지, ‘내게는 졸작을 쓸 권리가 있다’라고 뻔뻔하게 외치는 것과 다른 하나는 숙제를 제출하는 대신 커피 값을 내고 마는 것이다.

사는 동안 사랑하고 애착한 것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깊어지는 요즘, 내게 주어진 소소한 숙제들을 헌사라도 바치는 심정으로 정성껏 마무리하고 싶다.

 내 인생의 남은 숙제를 다 마치고 숙제장 마지막 페이지에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 받고 홀가분하게 하늘계단을 올라 갈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산문>  2019년 12월호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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