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텍쥐페리의《어린왕자》는 사랑의 좌절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좌절한 사랑을 회복하는 이야기이다.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와 꽃과의 관계 그리고 여우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연애관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나의 장미꽃에 책임이 있다.
어린왕자에게 꽃은 ‘변덕스럽고 까다로우며 콧대가 센 지겨운 여자’같이 다가왔으나 시간
과 정성을 들여 보살피며 성실하고 사려 깊게 대하면서 그 꽃은 그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아주 사소한 오해로 다투고 난 후 어린왕자는 먼 길을 돌아 지구별에 도착하지만 두고 온 장미꽃에 대해 ‘꽃들은 모순된 존재이지만 난 너무 어려서 그를 사랑할 줄 몰랐다’며 그리움으로 슬퍼한다.
사랑이란 잃어버리고 나서 알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왕자가 정원 가득 피어있는 오천송이 장미꽃들을 향해 말한다. “너희는 아름답지만 텅 비어있어. 누가 너희를 위해 죽을 수 없을 테니까. 물론 나의 꽃은 지나가는 사람들에겐 너희와 똑같이 생긴 것으로 보이겠지. 하지만 내게는 그 꽃 한 송이가 너희 모두 보다도 더 소중해. 내가 그에게 물을 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벌레를 잡아 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지. 불평하거나 자랑을 늘어놓는 것을, 또 때로는 말없이 침묵을 지키는 것을 내가 귀 기울여 들어 준 것도 그 꽃이기 때문이야. 그건 내 꽃이기 때문이지.”
연애란 생활 속에서 생기고 생활을 통해 깊어가고, 시간을 두고 공동의 체험을 쌓아가면서 생기는 감정이다. 어린왕자와 장미꽃은 서로에게 길들여지면서 정들게 되어 서로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이다. 여우의 말에 따르면 정든다는 것은 인연으로 맺어진다는 것, 즉 서로를 속박한다는 뜻이다. 사랑이 속박인 것은 서로에게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은 상대방의 자유를 빼앗고 자신의 자유도 빼앗긴다. 그래서 깊은 연분으로 맺어지는 것이다.
여우는 어린 왕자에게 말해 준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단다. 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건 그 꽃을 위해 네가 소비한 그 시간 때문이야. 너는 너에게「정든」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이 있지”
어린 왕자는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뱀의 힘을 빌려 고향별로 돌아갔다. 책임이란 인연을 맺은 사람의 곁에 있어주는 것이 아닐까.
이 세상에 오직 하나 밖에 없는 것
여우는 왕자에게 친해지자고 제안을 한다. 친해지기 위해 먼저 인연을 맺을 필요가 있는데, 그러기 위해선 참을성이 있어야한다고 얘기한다.
“너와 내가 정들게 되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할 거야. 넌 나에게 이 세상에서 오직 하나밖에 없는 아이가 되고 난 너에게 이 세상에 오직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되는 거지….
다른 모든 발자국 소리와 구별되는 발자국소리를 나는 알게 되겠지. 너의 발자국 소리는 나에게 음악처럼 들려 땅 밑 굴속에서 나를 밖으로 불러 낼 거야. 너는 금빛 머리칼을 가졌어. 밀은 금빛이니까 밀밭을 보면 네 생각이 날거거든. 그럼 난 밀밭 사이를 스치는 바람소리를 사랑하게 될 거야…“
밀밭, 바람소리, 발자국 소리. 그때까지 아무것도 아니던 것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랑이란 너무나 멋진 것이다.
“언제나 같은 시각에 오는 게 더 좋을 거야. 이를테면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 시에는 흥분해서 안절부절 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이지 알게 되겠지. 아무 때나 오면 몇 시에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하는지 모르잖아. 의식이 필요하거든”
연애를 하기 위해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 어색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필요한 진리가 아닐까. 어린왕자와 여우는 시간과 뜸을 들이면서 날마다 조금씩 친해져서 인연을 맺고 정들이는 일에 성공했다. 이것이 바로 연애다.
빅또르 위고의 말에 의하면 연애란 우주를 단 하나의 사람으로 줄이고 사람을 신에 이르게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꽃과 여우를 가진 사람은 지금 연애 중이다.
《소중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마타 마사히로 지음. 참솔>참고
<한국산문> 특집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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