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둠이 채 벗겨지지 않은 하늘과 간밤의 정적을 머금고 단잠에 빠져 있는 대기의 입자들이 뜨거운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가느다란 수증기에 조금씩 흔들린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시공간인 이 순간은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으로 완벽하게 채워진다.
이른 아침에 듣는 트럼펫소리는 기상나팔처럼 싱싱한 음색으로 새벽의 어둠을 밀어 올려 하늘을 열고, 이제 곧 시작될 하루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선사한다. 아직 잠이 덜 깬 온 몸의 세포들이 깨어나고 경쾌한 멜로디가 혈관을 타고 전신으로 흐른다.
2009년 서거 200주기를 맞는 하이든은 어린 아이와 같은 천진함과 맑은 심성을 표현하는 작곡가로 ‘교향곡의 아버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108개의 교향곡과 84개의 4중주곡, 3개의 오라토리오와 34개의 가극 등을 작곡했다.
내가 즐겨 듣는 <트럼펫 협주곡>은 E플렛 트럼펫을 개발한 트럼펫연주자인 바이들링거(Anton Weidlinger)를 위해 작곡한 하이든의 유일한 협주곡으로 트럼펫의 풍부한 울림과 화려한 오케스트라의 반주가 매력적인 곡이다.
1732년 3월 31일, 오스트리아의 작은 시골마을 로라우에서 수레바퀴를 만드는 가난한 대장장이 아들로 태어난 하이든은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보였으나 소년시절, 역시나 가난한 선생에게서 음악수업을 받을 때는 밥을 먹는 것보다 매 맞는 횟수가 더 많았지만 낙천적인 성품과 인내심으로 어려움을 잘 참아냈다.
거세한 남성소프라노인 카스트라토가 될 정도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졌던 하이든은 지금의 빈 소년합창단의 전신인 성 스테파노 대성당의 소년합창단에서 활동했는데 변성기가 되자 낡아 빠진 내의 세 벌과 코트 한 벌만을 가진 채 합창단에서 해고되었다.
당시 17세이던 그는 한겨울에 난로도 없는 친구의 다락방에서 얹혀살며 가난한 동료 음악가들과 남의 집 창밑에서 세레나데를 연주해 주고 푼돈을 벌기도 하고, 헐값으로 레슨을 해주는 등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음악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29세 되던 해인 1761년, 당시 유럽 최대의 재산가인 헝가리의 호족 에스테르하지가(家)의 부악장으로 고용되면서 하이든의 음악가로서의 운명은 탄탄대로를 걷게 된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대저택에서 단원들과 함께 기거하며 작곡 활동에 전념할 수 있었고 34세 때 궁정악단의 악장으로 취임한 후로는 우수한 관현악단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방식의 음악을 시도하고 독자적인 교향곡양식을 모색하는 등 자유로운 창작활동을 영위해나갔다.
온화하고 유머러스한 성품의 하이든은 100여 명이 넘는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원만한 일처리로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사람으로 ‘파파하이든’이라는 푸근한 별명을 얻었으나 사람 좋은 하이든에게도 견디지 못할 일이 있었으니 그의 아내 마리아 안나 켈러였다.
1760년 하이든을 사랑하던 소녀가 수녀원으로 들어가게 되자 가발업자인 그녀의 부모는 하이든으로 하여금 수녀원에 들어간 딸 대신 그녀의 언니와 결혼하도록 종용했다. 당시 28세인 하이든보다 3세 연상인 마리아는 박색에다 잔소리꾼이었으며 신경질적이고 질투와 허영이 심한 악처의 전형으로, 둘 사이에 자식은 없었다. 게다가 음악가의 아내로서는 치명적으로, 음악에 대한 무지와 몰이해로 하이든의 자필 악보를 불을 지필 때 불쏘시개로 쓰는가 하면 냄비받침으로 사용하기도 하고, 작곡메모를 해 놓은 종이를 가위로 잘라서 파마할 때 머리칼을 마는 데 쓰기도 했다.
“그녀와의 결혼은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라고 인품 좋은 파파하이든은 개탄했다.
하이든은 마흔이 되던 해, 후작의 저택에 고용된 이탈리아 출신의 메조소프라노 가수 루이지아 풀첼리(Luigia Polzelli)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의 사이에 아이가 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오스트리아를 떠나 본 적이 없었던 하이든은 1791년, 런던의 공연흥행사이며 바이올린주자인 요한 페터 잘로몬 (J. P. Salomon․1745-1815)의 권유로 두 차례 영국엘 가게 되었는데, 이는 깔끔한 하이든이 평소 자신이 쓰던 면도기가 불편하던 차에 잘로몬이 신식면도기로 말끔하게 면도하는 것을 보고 호기심을 나타내자 ‘런던에 가면 이것 보다 더 좋은 면도기가 많다’는 말에 솔깃해서였다는 일화도 있다.
런던에 머무는 동안 하이든의 활약은 매우 성공적이어서 그가 만든 교향곡들은 관현악 작품의 절정을 이루었다. 이때 만들어진 교향곡들은 자유로운 형식과 풍부한 영감,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작품들로써 하이든의 매력과 실력이 그대로 녹아있어 영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에 걸쳐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청중들은 ‘놀람’, ‘시계’, ‘군대’, ‘큰북 연타’ 등과 같은 별명들을 만들어 하이든의 작품에 붙이고 즐겨 들었다.
1804년 빈으로 돌아온 하이든은 굼펜도르프가(街) 자택에서 말년을 보냈는데 침실 벽면을 자신의 명곡 <캐논 op.46> 의 초고로 도배를 해 놓고 이를 본 친구들에게 “나는 빈곤한 사람이다. 벽에 걸 그림 같은 것은 살 형편이 못 되니 손수 만든 장식품으로 이를 대신하려 한다.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은 아마 세상에서 단 한 사람, 나밖에 없을 것이다.” 라는 말을 남겼다.
1809년 5월31일 하이든은 77세를 일기로 세상을 뜨고,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만든 벽 장식은 세상에서 둘도 없는 진기한 보물이 되어 음악애호가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음악이 정서적인 면은 물론 신체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지만 최근 미국의 학자들은 신체기능 중에서도 특히 혈관기능 향상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경쾌한 음악이 좋으나 자신이 즐겨듣는 편안한 음악이 가장 효과적이다.
하이든의 트럼펫 협주곡을 들을 때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는 것은 그들의 연구결과를 어느 정도 입증해주는 사실이 아닐까.
“빈 고전파의 3대 음악가는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따위의 교과서적인 음악만을 얘기한다면 너무 삭막하다. 암기용 구절일랑 던져버리고 파파하이든의 소박하고도 유쾌한 음악으로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 보는 건 어떤가.
'수필, 어려운 숙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열정과 냉정 사이> (0) | 2010.10.19 |
---|---|
<사라진 해운대> (0) | 2009.10.15 |
<프리다와 디에고> (0) | 2008.12.01 |
이 사람이 사는 삶-지휘자 함신익 (0) | 2008.11.15 |
<헤어지기 싫어서> (0) | 2008.06.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