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가면 관광 필수 코스로 ‘도깨비도로’ 라는 너무나 유명한 곳이 있다.
내리막길이지만 기어를 중립에 놓고 차를 세우면 오르막에 세워둔 것처럼 슬금슬금 뒷걸음질 치는 듯한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길이다. 눈에 보이는 현상이 진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적잖이 당혹스러웠다. 믿기지 않아 실제로 생수병을 굴려보았더니 분명히 앞으로 굴러갔다.
“한 번 내리막을 당하니 재주가 없더라, 아무리 애를 써도 형편이 피질 않고 바닥까지 내려가고야 말더라.”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할 때마다 시어머니는 늘 내게 변명삼아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내리막이라, 그 때까지 내게 내리막이란 신나게 미끄러지듯 내달릴 수 있거나 수월하게 갈 수 있는 그런 긍정적인 의미였다.
어머님의 내리막이란 골짜기 아래에서 위를 보았을 때 저 높은 곳에 언제 올라가나 하는, 막막하고 고달픈 심정을 뜻하는 것으로 상황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다거나 혹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데 대한 실망이나 분노의 뜻 일게다. 일생을 하나의 큰 곡선으로 본다면 어머님이 말씀하시던 그 시기는 정점을 향해 상승곡선을 그려야 하건만 도리어 꼬일 때에 해당된다.
40고개를 넘기면서 완숙기를 맞이한 당신과 장성한 네 아들들의 든든한 모습만으로도 시아버님의 병환은 상쇄되고 남을 법했겠지만, 그게 꼭 그런 것만은 아닌 모양이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까짓 게 무에 고생이냐고, 심지어 아들들마저도 동의를 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 자존심은 강하나 순하고 여린 성품의 어머님은 쉬 상처를 받아서인지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고개를 흔들고 손사래를 치곤 하셨다.
불행이나 고통처럼 주관적이고 이기적인 감정은 없을진데, 어쩌면 어머님은 당신의 인생길을 도깨비도로를 가는 것처럼 착각을 했던 것은 아닐까. 올라가고 싶은데 계속 내려가기만 한다는 착각 말이다.
얄밉게도 며느리 넷은 시어머님이 공주병을 앓고 계신다고 치부하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는 혼란한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고부간으로 만난 지 25년째, 하지만 어머님으로부터 즐거웠던 과거의 회상을 들은 기억이 드물다. 그 동안 무수한 오르막의 기쁨이 있었을 테지만 그것을 느끼고 누리는 것은 어머님의 몫이라고 그냥 내버려둔 나의 무심함이 요즘 들어 부쩍 내 가슴을 무겁게 내리누른다.
이제 어머님은 숱한 굴곡을 넘어 지나온 삶 중에서 얼마 되지 않는 기억을 붙잡고 되새김질하며 살아가고 있다. 70여년의 기억이 그리도 짧게 축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만큼 단축된 추억 속을 맴돌고 있다.
정작 어머님이 얘기하시던 내리막이란 지금부터 일게다. 가파른 오르막을 오를 일도,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을 일도 없이 그저 조용히 조심스레 내려 갈 일만 남았을 뿐이다.
어디 어머님뿐이랴, 삶이란 모두가 도깨비 도로에 놓여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현장인지 모른다.
뒤를 따르는 나는 도깨비도로를 올라가고 있는가, 내려가고 있는가.
2007년 《에세이플러스》2월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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