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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영이가 자란다

현대미술처럼 2021년 8월 은영이의 미적 감각에 대해 써야 겠다. 학원을 다녀 오던 중 아파트 외벽의 방음벽중 한 장이 충격을 받았는지 깨졌는데, 파편으로 흩어진 것이 아니라 거미줄무늬처럼 방사선으로 균열된 채 붙어있었다. 그 상황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었더니 은영이의 반응이 "예쁘다, 현대미술처럼" 였다. 유리가 깨지면서 생긴 기하학적인 무늬를 보고 예쁘다고 느끼는 미적 감각이 놀랍고 독특하고 기특하다. 은영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일상의 남루함을 잊게 해준다. 더보기
눈물 2021년 6월 갑자기, 아무 이유도 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냐고 은영이가 물었다. 느닷없이 눈물이 날 때가 있었다고 답해줬다. 할머니도 그래요?하며 노라는 은영. 참 복잡하고 섬세한 은영이의 감성세께는 내가 다 받아내지 못할 크기이다. 세대 간의 간극은 일치될 순 없겠지만 공감은 할 수 있는 일. 은영이의 놀라움을 잠재워 줄 반응이 필요하다. 할머니의 감정조절과 훈련이 필요하다. 더보기
약속 2021년 5월 은영이는 약속에 대해 상당히 단호하다. 친구들이 약속과 달리 놀이터에 나오지 않아 크게 실망하고 분에 못이겨 대성통곡을 했다. 달래주기에도 너무 격한 반응이라 지켜볼 수 밖에 없고 그저 은영이의 감정에 공감을 해 줄 뿐이다. 한참을 울고 난 뒤 빨개진 코로 "짜증내서 죄송해요"한다. 나는 화가 나면 화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은영이는 자기감정을 제 방식대로 정리하고 있었다 성숙한 인간으로 자라나기 위한 과정이라 여긴다. 불편한 감정을 묻어두지 않고 해소하려는 결기가 기특하고 부럽다. 감정의 찌꺼기를 남겨두지 말아야 하는데, 난 그러지 못하니까 은영이가 존경스러운 것이다. 오늘도 손녀에게서 배움을 얻었다. 더보기
인생게임 은영이가 즐겨하는 게임 중엔 이 으뜸인 것 같다. 인생경로와 대학경로 중 선택하여 출발해서 여러가지 상황을 반영하며 진행하는 보드게임이다.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며 주춤거리는 어른들과는 달리 은영이는 거침이 없다. 다양한 경로와 다양한 상황을 즐기는 것이, 모험을 즐기는 것과 동일하단 생각이 든다. 확고한 신념으로 쭉쭉 나아가는 게임방식을 보면 결정이 빠르고 생각이 확고한 아이란 느낌을 받는다. 비록 게임이지만 성격이나 기질이 나타나는 것을 감안할 때, 은영이는 계산이 빠르고 망설임이 적은 것 같다.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만들어내고 활동을 연구하고 질문을 하는 은영이의 에너지가 기특하고 부럽고 사랑스럽다. 지치지도 않고 게임을 제안하는 은영이를 따라가기에 할머니의 체력이 보잘것 없어 슬플 때도 있다. 임.. 더보기
인생은 은영이처럼~ 배추김치없이 먹는 밥이 심심해져서 절임배추를 주문했다. 가을김치를 담기로 한 날 은영이가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고 한다. 야무지게 앞치마랑 머릿수건까지 챙겨와서는 김치 버무릴 대야 앞에 포진하고 앉았다. 망설임없이 배추 한 포기를 제 앞에 있는 대야에 척 갖다 넣더니 "고추장을 발라야 해"하면서 양념을 배추에다 쓱쓱 문지른다. 김치 담는 일을 노동처럼 여기고 진을 빼는 이 할미가 무색할 정도로 은영이는 거침이 없다. 내가 하는 양을 한 번 보고는 그대로 따라서 배추를 뒤집어서 양념을 바르고는 척 걸쳐놓으며 한개 완성, 하고 소리를 지른다. 김치담는 일이 은영이에게는 유쾌한 놀이가 되는 모양이다. 은영이와 함께 발랄하게 김치를 만들다보지 절임배추 10kg이 순식간에 김치가 되어 통속으로 들어갔다. 노동을 놀.. 더보기
I feel super good 코로나때문에 온라인수업을 하는 은영이를 잠깐 보러 갔다. 체육수업이 진행중이었다. 선생님의 구령에 따라 스쿼트, 플랭크 동작을 열심히 따라하는 은영이를 보고 있노라니 어느새 저만치 자랐나 싶어 대견스러워서 살짝 감동하고 있었다. 10분 쉬는 시간동안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데 은영이는 수다대열에 참여하진 않았다. 같이 떠들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참견같아 입을 다물었다. 할머니도 눈치를 챙겨야 하기 때문이다. 영어수업이 시작되고 선생님이 학생 이름을 하나씩 부르면서 '오늘 기분이 어떠냐'고 묻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심 은영이가 어떤 대답을 할까 궁금했다. 드디어 은영이 차례, 질문을 받은 은영이가 "I feel super good."이라 말하길래 속으로 '제법인데? super란 단어를 쓰다니,.. 더보기
은영이는 눈부시게 자라는 중 초등학생이 된 은영이가 부쩍 으젓해진 것 같다. 어린이날을 맞아서 제엄마랑 이모와 함께 대학로로 나들이를 갔다. 호호식당에서 호호 웃으며 즐겁게 식사를 했다. 건강검진 후 위장상태가 그리 편안하지 못해서 조심스러운 가운데 식사를 하던 중 건진 후에 병원에서 받아온 카스테라 얘기가 나왔다. 유심히 듣던 은영이가 '할머니 카스테라 다 먹었어요?"라고 묻길래 "할머니 잠든 사이에 이모가 다 먹어버렸어" 라고 웃으며 대답을 했다. 은영이가 근엄한 표정을 짓더니 이모를 향해 "이~모~"하며 목소리를 한껏 낮추어 나무라듯이 말했다. 적시타를 때린 은영이의 한마디에 박장대소가 터졌다. 한동안 눈물이 찔끔 날 정도로 웃어 제꼈다. 과연 은영이는 만능치료사 같은 존재이다. 더보기
은영이에게 보내는 할머니의 편지 2014년 9월 22일 오후 2시 2분 한 아기가 태어났어요. 아기는 머루같이 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엄마와 찻인사를 나누었지요. 엄마는 행복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답니다. 아기를 만난 아빠 엄마는 아주 많이 행복했어요. 백구노래를 들으며 백구다리가 왜 긴지 궁금해하던 조그만 아가는 어느새 훌쩍 자라 여덟 살이 되었답니다. 그림을 잘 그리고 역사를 좋아하는 아가의 이름은 '박은영' 이랍니다. 뜀박질도 잘하고 게임도 즐기는 은영이는 이제 초등학생이 될거예요. 은영이는 새 선생님과 새 친구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어떤 그림을 그릴까요? 키도 쑥쑥 마음도 쑥쑥 자라날 은영이의 마음속에 아름다운 꿈 씨앗이 심어졌으면 좋겠어요.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워서 멋진 열매가 맺히도록 할아버지 할머니가 응원할.. 더보기